루시가 오는 날이었다. 지난 한달동안 애타게 기다린 동료이기도 했고, 아주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이기도 했다.

전날 새벽에 급체를 했는지 속이 더부룩해서 잠을 두번이나 깼는데 결국에는 소화제를 먹고 나서야 잠에 들 수 있었다. 그래서 아침에 일찍 일어날 수 있으려나 걱정했는데 루시가 온다는 긴장감에서인지 눈이 생각보다 일찍 뜨였다.

오전 10시. 로컬 카페에서 루시를 만났는데 이런 만남이 처음도 아니기에 오버스럽게 기뻐하지도 그렇다고 어색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온라인에서는 뵈었지만 실제로는 처음보는 찬주님과도 인사를 주고 받았다.


(루시와 드디어 만났다.)


‘어디를 갈까요?’

라고 물었지만 사실 오늘 일정은 대략적으로 머릿속에 구상을 해둔 상태였다. 두 사람 모두 치앙마이가 처음이기도 하고, 오자마자 짐만 내려놓고 온 상태이니 에너지가 있을리가 없다는 생각에 여러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상황1) 11시에 열리는 까이양 치앙도이로 가요.

시간이 애매해서 마야몰 오픈 시간을 기다리고 밥을 먹으러 가기도 그렇고 주변에 음식점을 가기에도 거리상 적절하지가 않아서 좋아하는 까이양 치앙도이를 제안했다. 루시는 배가 고픈지 기다리기 힘들어 보였지만 조금만 참아보기로 한다. (웃음)

역시나가 역시나로 까이양은 진리였다. 두사람 모두 맛있게 먹었는데 그동안 먹었던 메뉴중에 가장 양적으로 많았던 것 같다. 이것도 맛있고 저것도 맛있어 하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고 좋아하는 사람과 맛있는걸 먹으니 밥도 더 맛있다. 찬주님과는 처음 만나는 자리이기에 더 많은 질문을 하기도 하고 어색하지 않도록 이것저것 이야기 보따리를 꺼내기도 했다.


상황2) 환전하고 유심을 구매하시죠.

도시를 이동하면 당연하게도 해야할 미션이 2가지가 있는데 환전과 유심 교체이다. 입국시 공항에서 모두 해결이 가능하지만 이왕이면 더 많은 돈을 환전하고 더 좋은 플랜으로 인터넷을 하려면 도심에 들어와서 하는 것이 좋다.

단골 렌트샵에 가서 루시 헬멧을 빌리고 Super Rich Money Exchange로 향했다. 올드시티 위쪽 강을 껴서 이동을 했는데 루시를 위해 강가 주변으로 달려주니 좋아하더라.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도착 후에 찬주님 돈과 함께 환전을 했고 마야몰로 돌아와 AIS 유심도 갈아끼우는데 성공했다. 치앙마이에도 다양한 통신사가 있는데 굳이 AIS를 고집하는 이유는 마야몰의 CAMP 코워킹 스페이스 때문이다.

캠프에서 잠시 담소를 나누다가 루시와 찬주님은 체크인을 하러갔고, 나는 일을 했다. 내일부터 발품이 시작되기에 그 전에 발품 프로젝트에 대한 홍보를 해야했기에 놀더라도 요 녀석만큼은 콘텐츠를 마무리하고 홍보를 할 필요가 있었다. 4시쯤 루시는 캠프로 다시 돌아왔고 둘이 지하로 내려가서 패션 후르츠를 사서 사이좋게 나눠 먹었다.


상황3) 분위기 좀 둘러볼까요.

12월 31일에 루시와 찬주님이 온다는 이야기를 들었을때 치앙마이 연말에 대해서 공부를 좀 해뒀다. 혼자였으면 카운트다운이고 뭐고 집에서 잠을 잤을텐데, 치앙마이에 오는 첫날이면서 2017년의 마지막이기도 하니 평소에 안하던 활동을 해보자며 이것저것 알아본 것이다.

원래 계획은 원님만 마켓에서 저녁을 해결한 후 타페게이트에서 등불을 날리고 다시 원님만으로 돌아와 카운트다운을 하려했다.

계획에서 고려되지 않은 상황 첫번째는 원님만에 가만히 있으면 될 것을 타페게이트에 이르게 가서 선데이마켓을 본 것이었다. 몸이 피곤한 상태에서 많은 이동을 할 필요가 없는데 굳히 타페게이트 분위기를 보고 온다고 움직였다가 힘을 뺐다. 두번째 고려되지 않은 상황은 이동 수단이었다. 연말인걸 감안해서 움직였어야 하는데 평소에 스쿠터를 타고 다니다보니 차가 밀릴것을 생각지 못했다.

아직 찬주님과 만나지 않은 상태에서 루시와 먼저 원님만으로 이동을 했는데 이른저녁이여서인지 원님만에 먹을게 별로 없는거다. 그래서 여기서 기다릴까 하다가 루시에게 타패게이트에 가볼래요하고 물었더니 그러자 했다. 도착했더니 등불 날릴 조짐을 전혀 안보였는데 루시가 썬데이 마켓쪽으로 이동을 했다. 체력적으로 돌아가는게 맞을 것 같은데 좋아하는 루시를 보니 차마 돌아가자는 말이 입에 떨어지질 않더라.


(타패게이트에 오랜만에 와서 나도 신났다.)


그 사이에 선데이마켓으로 오려던 찬주님은 그랩을 타는데 실패했고, 루시와 나는 원님만으로 다시 출발했다.

돌아오니 아까보다는 좀 북적북적하기는 하는데 딱히 음식이 더 늘어난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좋아하는 꼬치구이로 시작을 하려고 구매를 했는데 웬걸? 이놈의 자식이 엄청 매운거다!!! 치앙마이에 와서 이렇게 혓바닥이 마비가 올 정도로 매운건 처음이였다. 어찌어찌 남은 꼬치구이를 다 먹고는 그 옆에 닭꼬치를 다시 먹었는데 이녀석은 맛있었다. 된장 같은 양념으로 덮혀 있는데 이거 이름이 뭐였더라…


(이때만해도 저 꼬치가 우리의 혀를 마비시킬줄은 몰랐지. 왼쪽부터 루시, 찬주님, 나)


그 이후에도 예상치 못한 동선이 생겼다. 배를 채우지 못해서 씽크파크 마켓 구경을 하면서 마야몰 지하까지 다시 이동을 했다. 지하에서 라면 2그릇을 비웠는데도 카운트다운까지 시간이 한참 남은거다. 진짜 이때 심정은 집에 돌아가서 발뻗고 자고 싶었다. (웃음)


상황4) 치앙마이의 꽃, 등불 날리기

12시가 되기까지 시간이 남아돌아서 후식으로 님만해민에 있는 수박빙수를 먹으러 이동했다.
그런데 하늘에서 익숙한 모습이 보이는게 아닌가?
등불이 날아가고 있는 모습이었다.

루시와 찬주님에게 의사를 묻지도 않고 등불을 보러 가자고 했다. 그랩과 우버는 잡히지도 않고 결국 썽태우를 타고 갔는데 처음에는 신기해하던 두 사람은 어느새 차 안에서 멍을 때리고 있더라. 썽태우가 재밌긴한데 매연이 심해서 기관지가 약한 사람은 오래 타질 못한다. 오랜만에 탄 나도 ‘매연이 참 심각하구나.’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타패게이트에 가까워질수록 오랜만에 두근거렸다. 하늘에는 등불이 날아가고 있었고 많은 사람들은 소원을 빌며 사진을 찍으며 등불을 만지작거렸다. 우리도 한참을 구경을 한 후에 60밧에 등불을 사고 띄울 준비를 했다. 작년에는 등불이 나무에 걸려서 다시 내 손으로 돌아왔었는데 이번에는 그러질 않길 바라며 등불을 잘 보냈다. 물론 나, 루시, 찬주님의 소원을 안고 말이다.


(등북은 정말 봐도봐도 멋있었다.)


상황5) 썽태우가 잡히질 않는다.

여유롭게 10시쯤 이동을 하려고 타패게이트 길목에 서서 썽태우를 잡았는데 쉽지가 않았다. 아니지, 실상 맨 처음에 탔던 썽태우를 타기만 했어도 그 이후에 고생을 안했을텐데, 자리가 모자른줄 알고 타지 않았던 썽태우를 놓쳤다. 이때만해도 앞으로 고생이 시작될 것이란것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진짜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게 인생인 것이다.

썽태우는 도저히 잡을 수가 없어서 그랩을 타기로 했는데 어렵사리 한대가 타패게이트로 오기로 했다. 하지만 현장은 차들이 영 앞을 가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구글 지도만 봐도 이미 타패게이트로 들어오는 길목은 빨간색의 향연이었다.

‘예약한 그랩이 제 시간에 올 수 있을까?’

10~15분만에 온다던 그랩은 한시간이 지나도록 도착하질 못했다. 2시간이나 여유로웠던 시간은 점점 사라지고 이대로라면 카운트다운을 할 수 없을지도 몰랐다. 어떻게 해야하지? 썽태우를 잡아야하나? 그랩을 기다려야하나? 머릿속이 복잡했다. 어떤 선택을 해야할지 갈팡질팡하고 있는 사이 시간은 계속 흘렀다.

(그랩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 찬주님과 루시)


그리고 시계를 확인하니 23:20

이제는 더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가는 길도 막힐지 모르는데 이대로 그랩을 기다렸다가는 차안에서 카운트다운을 해야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그래서 자리를 이동해서 썽태우를 다시 잡기 시작했다. 정말 다행히도 아슬아슬하게 썽태우를 탈 수 있었다. 타고 있는 그룹이 3그룹이라서 어떻게 이동할지 조마조마했는데 카운트다운 10분전, 원님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제야 마음이 놓이더라.


치앙마이에서의 카운트다운, 잘가라 2017

카운트다운을 기다리고 있는데 오늘 하루가 참 길었던 것 같다. 예상으로는 여유롭게 하루를 보내는거였는데 무슨 폭풍우가 지나간것과 같은 긴장감의 연속이었고 체력 소모도 상당했다. 그래서 좀 웃겼던 것 같다. 생각대로 되는게 하나도 없구나 싶다가도 생각했던 그 모든걸 다 이룬 날이었다.

그리고 내 생애 처음으로 카운트다운을 해봤다.

우리 아빠는 자고 있으려나. 한국에 있었다면 미정이랑 조카들이랑 뭐했을려나. 하고 싶은 일이나 욕심보다 가족 생각이 많이 났다. 그래서 내년에는 꼭 한국에서 연말과 연초를 보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2년동안 가족과 함께 못했는데 그게 미안하기도 하고, 오히려 내가 더 그들과 함께하고 싶은 욕심이 커진것 같다.

‘그래. 내년에는 꼭 가족과 보내자.’




✍️ 업무일지

여행은 살아보는거야